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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Oratio de hominis dignitate)'에서 인간존엄 사상을 최초로 정립했다. 인간존엄 개념을 그가 고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마네티(Gianozzo Manetti, 1396-1459)의 영향하에 인간존엄을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글은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은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전환되는 과정에 위치한다. 인간존엄 사상은 이후 계속 발전하는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은 그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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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와 중세에 인간존엄 사상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
인간존엄 사상은 서양 고대와 중세에는 등장하지 않고 근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났다. 왜 고대와 중세에 인간존엄 사상이 출현하지 않았을까? 몇 가지 답변이 가능한데, 첫째는 서양 고대와 중세가 철저한 신분사회여서 인간존엄 사상이 등장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플라톤의 이데아론60일선매매
,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엔텔레케이아)론, 교부철학, 스콜라철학이 대세를 이루는 사상이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존엄' 개념을 그 당시에는 모든 인간과 연결하지 않고 일부 특별한 소수에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덕있는 삶을 통해 존엄은 획득되는 가치였는데, 이런 용례는 키케로에게서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에 인간존엄 사상은 없었지만 이에 맞체리마스터 공략
먹는 사상은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부 소피스트가 주장한 '평등' 사상과 스토아철학의 '사회성(오이케이온)' 사상을 들 수 있다. 소피스트인 안티폰(Antiphon)은 "자연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이방인이거나 그리스인이거나 간에 평등하다"고 가르쳤고, 히피아스(Hippias)는 만인은 태어날 때부터 동등한 시민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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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아 철학이 주장한 '오이케이온(Oikeion)'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라는 뜻으로, 인간에게는 동료 인간을 배려하는 사회적 성향과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질서지워진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시민주의 등 인도주의 이념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안티폰과 히피아스의 '평등' 사상이나 스토아 철학의 '오이케이온' 사상은증권사이벤트
현실을 바꾸는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시대보다 사상이 앞서간 것이다. 이런 시대상황에 인간존엄 사상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에 근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는 인간존엄과 천부인권 사상은 현실을 바꾸는 파괴력을 띠고 있었다. 
서양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타난 인간존엄 사상
피코델라 미란돌라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에서 인간이 위대한 기적이요 정말 당당하게 경탄을 받을 만한 이유를 하나님이 아담에게 허락한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찾았다. 
"오 아담이여, 나는 너에게 일정한 자리도, 고유한 면모도 부여하지 않았노라!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어느 면모를 취하고 어느 임무를 맡을지는 너의 희망대로, 너의 의사대로 취하고 소유하라! 여타의 조물들에게 있는 본성은 우리가 설정한 법칙의 테두리 안에 규제되어 있다. 너는 그 어떤 장벽으로도 규제받지 않는 만큼 너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네 자유의지의 수중에 나는 너를 맡겼노라!) 네 본성을 테두리 짓도록 하여라!" (17면)
미란돌라는 신이 자리를 정해준 생명체와 자기 자리를 스스로 구하는 생명체를 구분했다. 인간은 후자인데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의지'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신이 부여했다는 점에서 신과 연관되나, 인간이 '자유의지'를 직접 행사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자유의지'를 카멜레온 같이 무엇이나 될 수 있는 인간의 특전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기를 온갖 육체의 얼굴로, 모든 피조물의 자질로 조형하고 형성하고 변형할 수 있으니 인간을 두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역자인 성염 교수는 '옮긴이 해제'에서 미란돌라의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피코의 인간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이다. 우주의 법칙을 초월하고 심지어 역사의 법칙도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 인간은 자기 존재를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실현한다. '작용은 존재를 따른다'는 중체 철학 명제와 정반대로 '존재는 작용을 따른다'는 근대 명제를 내건 셈이다(August Buck)."
근대 이후 사회적 약자의 투쟁으로 쟁취된 인간존엄과 천부인권
서양 근대에 이르러야 인간존엄 사상은 등장한다. 인간존엄은 처음에는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로 설명되다가, 후에는 인간 상호 간에 공통된 것으로 변모한다. 
신을 매개로 하지 않는 인간존엄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 상호 간에 공통된 것이므로 인간존엄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생각이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종교전쟁이었다. 자연법이 보편타당하려면 기독교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위한 규범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사고였다.
특히 '신이 없더라도 타당한 자연법'으로 사무엘 푸펜도르프(Samuel Pufendorf, 1632-1694)는 인간존엄 사상을 주장한다. "인간은 오성의 빛, 즉 구별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타고났으며, 무수한 예술에 정통한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이미 인간이란 단순한 명칭에 존엄이 있다. 이 존엄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부여되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천부적으로 동등하다." (Hans Welsel, 박은정 역, "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삼영사, 2005, 162면 이하, 203면)
피코 델라 미란돌라로부터 시작된 인간존엄 사상은 이후 인권선언 등에서 천부인권으로 선포되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사회적 약자의 투쟁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인간존엄과 천부인권은 여성, 노동자, 빈민, 흑인, 식민지인, 노예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의 투쟁을 통해 시민권의 형태로 서서히 쟁취되었다. 
인간존엄과 천부인권에 대한 직접적 인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약자의 고달픈 현실"이었다. 인권 개념이 구체화되지 않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인간존엄과 천부인권 사상은 인권 침해에 대한 저항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나가며
미란돌라의 인간존엄 사상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 초반부에 등장한다. 중반부에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과 몇몇 철학자를 언급한 내용이고, 후반부는 '900명제'와 관련된 내용이다.
그는 자신이 주장한 '900명제'를 두고 '철학자 공의회'에서 토론할 것을 제안했고, 이 연설문을 철학자 공의회 개회식에서 발표하려 했다. '900명제' 중 일부 명제가 로마 교황청에 의해 이단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철학자 공의회는 개최될 수 없었고 연설문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연설문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얼마나 비장한 상태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전투 나팔이 울리고 전장에 임하게 되었으니 자신에게 행운과 길조가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인간에 대한 언급은 길지 않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이라는 제목조차도 그가 붙인 제목이 아니었다(1504년 스트라스부르크 판에 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존엄 사상을 최초로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은 인간존엄의 최초 버전으로 '인간존엄 사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인간존엄성에 대한 연설'은 사회적 약자의 투쟁을 이끌어내지도 않았다. 필자는 그의 글이 이러한 논증과 투쟁으로 이끌어지는 첫 관문이 되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을 뿐이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 또한 시대를 앞서간 사상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이끄는 사상이었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블로그: blog.naver.com/gojuraph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