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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물물교환과 가격의 경제학









앨빈 로스는 신장이식을 비롯한 다양한 시장설계에 기여한 공로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사진 노벨상위원회 웹사이트]







해마다 추석 무렵이 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결혼이나 취직 등 개인ELW추천종목
적인 일들을 캐물으며 입장을 곤란하게 할 때는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받아치라는 내용을 담은 한 신문 칼럼 때문에 2018년 가을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올해 추석을 맞이하며 필자도 경제학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볼까 한다. 가격이란 무엇인가.

가격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 ‘돈’과 관련된 싱가포르주식
것을 떠올리곤 한다. 동네 가게나 마트에서든, 인터넷 쇼핑몰의 화면에서든 가격의 단위는 ‘원’이나 ‘달러’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폐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가격이라는 것이 시장경제를 분석할 때 워낙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경제학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현할 때도 가격이 종종 등장한다. “모든 것에 가격을 붙이려고 한다”, “뭐인터넷릴게임
든지 돈으로 환산하려고 한다” 등등.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가격은 꼭 화폐단위로 나타낼 필요는 없다. 그게 편해서 화폐단위로 표현할 뿐이지, 유형이든 무형이든 이 세상에서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가격을 나타내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돈이 없어도 경제는 돌아가게 되어 있다. 물물교환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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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부모 찾아뵙는 것도 ‘기회비용’









가격은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기회비용을 뜻한다. 석기시대의 물물교환에도 가격은 존재했다. [사진 필바다이야기 사이트
자가 챗GPT를 이용해 그린 그림]







석기시대 인간 A씨는 지금 돌도끼를 하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일 사냥을 하러 나가려면 도끼보다는 돌화살촉 3개가 있으면 훨씬 유용하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근처 마을에 사는 B씨는 돌화살촉 3개를 갖고 있는데, 나무를 베어야 해서 도끼를 갖고 싶어한다. 만약 A씨와 B씨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다면 돌도끼 1개와 돌화살촉 3개를 맞바꾸는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 화폐 없이 이루어지는 물물교환은 이런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지만 매우 불편하고, 성사될 확률이 매우 낮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대가 갖고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끼리 운 좋게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욕망의 이중적 일치’라고 부르는 조건이다.

시간을 석기시대에서 현대로 돌려보자. S대 경제학과 교수 L씨는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어졌다. 근처 호프에 가서 바텐더에게 물물교환을 시도한다. “내가 경제학의 기회비용에 대해 10분 동안 설명해 줄 테니 나에게 수제 맥주 한 잔을 주시오.” 과연 성공할까? 이런 불편함을 없애주는 것이 화폐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래의 매개체가 있으면 교환이 훨씬 쉬워진다. L씨는 S대에서 강의를 한 대가로 화폐를 받고, 그 화폐 중 일부를 호프에 들고 가 맥주를 사 마시면 된다.
이런 모든 거래에서 서로 교환되는 것들의 가치가 다름 아닌 가격이다. 일상적으로 보게 되는 ‘맥주 한 잔 5000원’과 같은 가격은 화폐 단위로 나타나 있고, 그 맥주를 5000원 주고 사는 사람은 5000원으로 살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격은 기회비용을 나타낸다. 돌도끼 1개와 화살촉 3개를 물물교환하는 경우에도, 화살촉을 얻는 A씨는 돌도끼를 지불하는 것인데 결국 그 돌도끼가 본인에게 주는 가치를 포기한다는 의미다. 거래와 교환이 있다면 가격은 존재한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경제학자들이 모든 것에 가격을 붙이려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개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해서 암묵적인 가격도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그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선택이나 교환이 개재된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에는 가격을 붙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이번 추석에 부모님 댁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낼지 계획 중이라면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가격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함께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다른 곳에 쓴다면, 예를 들어 혼자 여행을 간다든가 그동안 밀린 일들을 해치운다든가 하면 본인에게 중요한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을 포기하고 부모님 댁에 가는 사람은 그 가치만큼의 기회비용을 ‘부모에 대한 사랑 표현’의 가격으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암묵적인 가격이 존재하는 데도 현실에서 화폐 단위의 가격표를 절대 볼 수 없는 곳이 신장이식과 같은 장기이식 분야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람마다 신장은 두 개씩 있고 이 중 하나를 떼어주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신장에 큰 문제가 생긴 사람도 운이 좋다면 다른 사람의 정상적인 신장을 이식받아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 신장이나 다 이식받을 수는 없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여러 가지 조건이 아주 잘 맞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신장이식 수술에서 큰 문제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신장병에 걸려서 내 신장을 떼어주려 해도 타입이 맞지 않아서 줄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신장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는 시장이 존재한다면, 가족이 신장병에 걸린 사람은 타입이 맞는 신장을 구하기 위해 매우 큰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내 신장이라도 떼어주는’ 수준의 비용, 즉 어렵고 힘든 수술을 직접 받고 후유증을 견디고 한동안 일을 못 해서 급여도 포기하는 그 모든 것이 신장 수요자가 생각하는 가격이 된다. 물론 사람의 장기는 절대로 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고, 경제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것에 동의한다. 장기매매 시장의 존재가 불러일으킬 온갖 사회문제들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어렵게 된다든가, 장기매매를 목적으로 한 범죄가 음지에서 만연하게 된다든가.
가격·화폐로 못 푸는 ‘경제 영역’도 존재 그래도 가족이 신장병에 걸려서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신장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사람은 속이 탄다. 가격표를 붙이지 않고도 적절한 공여자를 찾아낼 방법이 정녕 없을까? 하버드에서 가르치던 앨빈 로스(Alvin Roth) 교수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로스의 전공분야는 시장 설계. 꼭 돈을 주고받는 시장이 아니더라도 좀 더 효율적으로 신장이식이 이루어지도록 교환 방식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모든 거래는 기본적으로 물물교환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화폐를 개입시킬 필요 없이, 자기 신장을 떼어주는 수준의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게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 로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매칭』으로 국내에 소개된 앨빈 로스 교수의 저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매칭 시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예를 들어 신장이식을 필요로 하는 A와 B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 보자. A와 B에게는 각각 자기 신장 하나를 공여할 용의가 있는 건강한 배우자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타입이 맞지 않아서 자기 배우자에게 직접 신장을 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A의 배우자의 신장 타입이 B에게 맞고, B의 배우자의 신장 타입이 A에게 맞을 경우 서로 맞교환해서 신장이식 수술을 하면 A와 B와 그 가족들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 된다. 단순히 한 번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신장이식의 가능성을 현저하게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꼭 두 사람일 필요도 없다. A, B, C 세 사람이 있을 경우 A의 배우자가 B에게 신장을 주고, B의 배우자는 C에게, C의 배우자는 다시 A에게 주는 식으로 세 가족이 교환에 참여할 수 있다. 정보만 충분하다면 네 사람, 다섯 사람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

앨빈 로스는 외과 의사들과 이런 아이디어를 나누고, 신장 수요자들과 공급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체계적인 방법으로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실제로 이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로스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가히 차가운 머리와 함께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진정한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추석에는 우리도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각자 어느 정도의 기회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씩 따뜻한 가슴으로 돌이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